안녕하세요, 여러분!
[마음을 움직이는 마을공동(動)체]의 인터뷰어로 인사 드리게 된 혜야입니다.
이제 사자센터의 식구로 지낸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센터에 있으면서 활동가분들을 만날 때면 시민사회를 이끈 주역이자 마을 활동의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어 멋있고 대단하게 느껴왔어요.
지금도 멋있고 대단하신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득 마을로 돌아가면 누군가의 부모이자 아내, 남편, 형제라는 생각을 하니까 더 가깝게 느껴지고 애틋하더라고요.
어쩌면 같은 동네에 살고 있을 수도 있고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 친한 언니, 오빠로 만났을 수도 있는 사이였겠죠?
자주 듣고 말하는 단어, 마을공동체. 여러분들에게 마을공동체는 어떤 의미이신가요?
마을공동체는 사전적으로 마을을 단위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共同體(함께 공, 같을 동, 몸 체)를 풀어보면 ‘함께, 같은 몸’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답니다.
하나의 몸처럼 함께 생활하니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저는 공동체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해석해서 공동체에서의 동을 動(움직일 동)으로 생각해보았어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까지, 그리고 공동체 활동을 결심하고 활동에 참여하기까지 그 과정이 절대로 마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점차 마을을 움직이는 힘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마음을 움직이는, 마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기에 저는 움직인다는 의미를 고려해서 더 많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활동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신성동 주민자치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박현선 회장님을 모셨는데요,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을 활동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멋지고 가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모든 이야기를 글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회장님과 나눈 대화를 통해 다시 활동할 힘과 에너지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회장님. 2013년도에 처음 공모사업을 하시면서 이제 내년이면 10년 차가 되시는 데요, 혹시 마을 활동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A1. 네, 기억하죠. 제가 처음 활동을 했던 게 아파트 부녀회에서였는데, 그 당시에 아파트 놀이터가 너무 낡았어요. 아파트 놀이터를 개선하기 위해 부녀회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기존 부녀회원이 갑자기 한꺼번에 나가시는 바람에 부녀회에서 관리하던 독서실 관리 일까지 하게 되어 새벽 1시까지 아이들을 유모차에 재워가며 아파트 독서실 지키고 그랬거든요.
아파트 부녀회 활동을 시작으로 아파트 놀이터를 아이들 투표를 통해 바꿨어요. 그 이후로도 아나바다 나눔 장터도 하고 교복 나눔도 하면서 계속 아파트 내에서 엄마들끼리 공동체 활동을 했었고, 2012년 말부터 '신성동 마을공동체 마실'을 아파트 부녀회가 아닌 신성동 주민으로 꾸려 활동을 시작해서 2013년도에 공모사업 관련한 기사를 보고 공모사업에 도전했어요. 그해 사업을 받고 해보자 사업도 하게 됐죠.
2년 공모사업 진행 후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우리끼리 해보자고 운영위원들이 회비를 걷고 놀이를 진행했어요. 어려울 때는 중간중간 마을에서 후원도 받았고요. 실제로 운영에 드는 비용이 크지는 않아서 저희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열심히 해왔던 것 같아요.
Q2. 10년 전과 지금을 생각해보았을 때 어떤 게 많이 달라진 것 같으세요?
A2. 마을 활동을 시작하던 때가 출산을 하게 되면서 일을 그만둔 경우였어요. 집안일도 많고 아이를 키우면서 우울감도 있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출산으로 갑자기 그만둔 상황이라 마을에는 아는 사람들도 없고 무료할 때도 많았어요. 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해서 활동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까 무언가 시작한다는 기대감도 있고 뭐든 달라질 것 같고 재미도 있고 그랬어요. 아침 점심 저녁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근데 생각만큼 마을이 금방 변하고 바뀐 건 없었어요. 하긴, 뭐 1년 한다고 뭐가 엄청 바뀐다면 벌써 세상이 바뀌었겠죠. 지금은 전보다 일처럼 하고 있어요. 그때보다 다른 공동체와 연대하고 주민자치회 활동도 하고 활동량이 많이 늘었거든요.
Q3. 마을 활동하면서 사실 힘든 순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마을 활동을 계속하게 했던 원동력이 있으신가요?
A3. 저희 가족은 제가 하는 일을 엄청 지지하는 편이예요. 남편도 그렇고 만약에 가족의 지지가 없었다면 못하지 않았을까요?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밥을 챙기지 못할 때가 있지만, 가족들이 지지하고 응원해주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이 언젠가 지인한테 '저 놀이터 우리 아내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든 거야.'라고 자랑한 적이 있어요. 들으면서 웃기기도 하고 ‘남편도 나의 활동을 자랑스러워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아이도 학교에서 ‘엄마는 뭐하시니?’ 이렇게 물어봤대요. 그런데 거기서 ‘마을활동가예요.’라고 하니까 선생님이 ‘마을활동가가 뭐야?’라고 물으셨나 봐요. 사실 설명하기 어려웠을 텐데 거기서 ‘우리 엄마는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사람들이랑 모여서 회의도 하고 모임도 하는 그런 활동가예요.’라고 이야기를 했대요. 우리 아이가 그래도 나의 활동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그리고 초등학교였나 중학교 때에 엄마의 장점을 써가야 하는 숙제가 있었어요. 100개나 써야 했어요. 근데 제가 100개를 못 채우겠더라고요.(웃음) 아이한테 ‘엄마 장점이 뭔지 너도 좀 얘기해주면 안 되겠니?’라고 하니까 아이가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잖아.‘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마을 활동을 하다 보니까 아이를 하루종일 보살피고 이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아이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어요.
Q4. 진짜 힘이 되는 말인 것 같아요. 저도 같이 뭉클해져서 눈시울이 좀 붉어진 것 같아요.(찔끔) 가족의 응원을 힘 삼아서 계속 해왔던 마을 활동인데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의 회장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4. 저는 뭐, 저를 특별히 기억 안 해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저를 기억해주시지 않아도 ’이런 활동이 있었구나‘, ’이런 걸 한 사람들이 있었구나‘ 이 정도로만 생각해줘도 좋을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보다 이 일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저 혼자 한 건 아니잖아요. 마실 활동도 저랑 같이 한 동료들이 있었고 마을에서 했던 다른 원동력도 있으니까요.
Q5. 그래도 회장님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마을 활동을 하시다가 어느새 주민자치회 회장까지 하게 되셨어요. 주민자치회를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5. ‘주민자치회 회장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된 건 아니예요. 다만, 공동체 활동을 하다 보니까 마을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도 세우고 마을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들이 가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민자치회를 생각하게 됐고 주변에서 많이 권해주셔서 회장까지 되었네요. 주민자치회 활동을 하면서 마을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단체가 있고 서로 뜻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마을에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결국 이런 저런 분들이 모두 마을 주민이고 마을이거든요. 주민자치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게 그거인 것 같아요.
Q6. 앞으로 주민자치회 회장으로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만들어가고 싶은 모습이 분명히 있으실 것 같아요. 혹시 어떤 것들을 더 만들어가고 싶으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6. 저는 공동체 활동보다 주민자치회 활동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로 집행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해서 어렵죠. 공동체 활동할 때는 많아도 15명이었는데, 이제는 각기 다른 분과, 분야로 40명 정도가 모여서 하는 거라 실은 저도 어려워요.
근데 활동하면서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결정구조라든지 그리고 어떻게 소통해야 되는지 조율하는 방법을 배울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리긴 했지만, 일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고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에 대한 부담은 있어요. 제가 다 제시해야 하고 그렇지는 않지만, 그걸 요구받는 자리가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학습이나 고민이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계속 학습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맡은 책임이나 역할을 다하고 싶어요.
Q7.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마을 활동을 청년들이 이끌어야 하는 때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 활동을 막 시작한 청년활동가에게 해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을까요?
A7. 저의 청년 때를 생각해보면 물불 안 가리고 뜨거웠던 것 같아요. 나도 이제 성인이 되었고,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큰 행사도 욕심 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상은 단기간에 크게 달라지지 않거든요. 그러면 ‘에이,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꾸준하고 끈기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차근차근하다 보면 언젠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청년들의 마을 활동이 지속될 수 있게 경제적인 도움도 필요할 것 같아요. 청년들이 직장 다니면서 마을 활동을 하는 건 시간적으로도 힘든 일이거든요. 마을활동과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고... 지치지 말라고 하면 안 되겠지?(웃음) 지치면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눈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아서 기쁘고 감사한데,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처음 해보는 인터뷰라 서투르고 매끄럽지 않은 것들이 있었을 텐데도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신 박현선 회장님께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마음을 움직이는 마을공동(動)체]로 대전의 마을활동가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기대해주세요:-)